‘여자 라모스’ 이슬기가 들려주는 유쾌한 축구인생 이야기
센터서클
2020.07.28. 11:19
[센터서클 | 서건 대표] 우리나라 여자축구선수들은 은퇴 이후 안정적으로 진로를 펼쳐나가기 어려운 환경 속에 있다.(물론 이는 남자축구선수들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세미프로 이상의 성인 여자축구리그는 실업리그인 WK리그가 유일하다. 남자축구의 경우 프로리그인 K리그1,2와 세미프로리그인 K3, 4리그가 존재한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에서 여자축구는 남자축구에 비해 산업규모가 터무니없이 작다.
작은 산업규모 탓에, 여자축구선수들은 남자축구선수들에 비해 은퇴 후 축구와 관련된 진로를 개척하는 것에 어려움을 더 많이 느끼곤 한다. 또한, 그 좁은 WK리그에서조차도 은퇴한 여자선수들은 은퇴한 남자선수들과 경쟁해야 하기에 어려움은 더 커져만 간다. 그렇다고 축구와 관련되지 않은 다른 진로를 개척하기도 어렵다. 축구 이외의 것에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축구만을 보고 달리는 선수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 축구선수 이후의 삶에 있어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여자축구선수가 있다. WK리그를 경험한 후 미국 대학에 진학한 이슬기 선수는 현재 학생선수 신분으로 축구를 하며 ‘제 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축구선수로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는 이슬기 선수, 과연 그녀는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이슬기 선수와의 유쾌한 인터뷰를 통해 그 이야기를 들어봤다.
#. 대한민국에서의 이야기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한다.
인천현대제철에서 뛰었던 이슬기라고 한다.
너무 간단하다. 조금만 더 길게 해달라.
ㅋㅋㅋ 미국에서 학생 선수로 활동중인 26살 이슬기라고 한다.
고맙다. 우선, 이슬기 선수의 축구인생 이야기를 하려 한다. 축구는 언제부터 시작했나.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했다. 노원구에 있는 서울동산정보산업고등학교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축구를 좀 늦게 시작한 편이다.
왜 이리 늦게 시작한 건가.
사실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부터 축구를 하고 싶어했다. 근데 부모님의 반대가 너무 심하셨다. 그래서 축구를 하고 싶다는 꿈을 마음 속에 품고만 있었다. 그러다 고등학교 때 비로소 미뤄두었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고등학교 때는 부모님의 반대가 없었나.
뭐라 하시진 않으셨다. 오히려 지지해주셨다. 알아서 판단할 수 있는 나이가 됐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래서 내 꿈을 믿어주셨던 것 같다.
고등학교 졸업 직후 인천현대제철로 간 건가.
여자축구는 고등학교에서 리그로 직행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 여주대학교로 진학했다가 드래프트를 통해 인천현대제철에 입단하게 됐다.
인천현대제철에 입단했을 때의 기분은 어땠나.
다들 알겠지만 인천현대제철은 WK리그 팀들 중에서 가장 좋은 팀이다. 감사한 마음이 정말 컸다.
인천현대제철에서 뛰며 기억에 남은 순간이 있나.
3년 동안 인천현대제철에서 뛰었는데, 1년 차 때와 3년 차 때가 기억에 남는다.
1년 차 때는 모든 게 새로웠다. 특히 당시 감독님이 훈련에 대한 열정을 많이 가지고 계셨다. WK리그 1년 차를 거치며 축구 스타일도 많이 바뀌었다.
3년 차 때는 인생에 대한 고민이 많았었다. 그래서 기억에 많이 남는다.
1년 차 때 감독님이 누구였나.
최인철 감독님이다. 축구에 대한 열정이 많으신 분이다.
1년 차 때 축구 스타일이 바뀌었다고 했는데, 어떻게 바뀐건가.
고등학교나 대학교까지는 선 굵은 축구를 즐겨 했는데, 최인철 감독님을 만난 뒤에는 아기자기한 축구를 하게 됐다. 디테일한 축구를 배우며 빌드업과 패스 플레이에 신경을 쓰게 됐다.
처음에 물어봤어야 했는데, 포지션이 어디인가.
중앙수비수다.
중앙수비수면... 키가 커야 유리하다고 알고 있다. 여자축구선수 치고 큰 편인가.
엄청 큰 편은 아니다. 대신 작지도 않다. 덩치도 그렇고 작은 편은 아니다. 사실 난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중앙수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공격수도 하고 윙어도 했었다.
키는 몇 cm인가.
168cm다.
나와 차이가 그렇게 많이 나지 않는다. 난 170cm 조금 넘는데...
나도 170cm 넘고 싶다ㅋㅋㅋ
인천현대제철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3년 차 때 한 고민에 대해 알려달라.
3년 차는 제 2의 인생을 계획한 시기였다. 여자축구선수들의 은퇴 후 모습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다. WK리그는 실업리그다. 직업선수들이 뛰는 프로와 크게 다를 게 없다. 은퇴한 이후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인천현대제철에서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 동료는 누구인가.
장슬기 선수다. 친언니같은 분이다. 정말 좋아하는 선배다. 심적으로 의지를 많이 하는 언니다. 멋지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WK리그에서 가장 잘한다고 생각한 선수는?
같은 포지션에서 고르자면 김도연 선수를 꼽고 싶다. 지금 인천현대제철에서 뛰는 언니인데, 내가 정말 좋아하는 언니다. 축구를 정말 쉽게 하는 선수다. 보고 배울 점이 너무 많다.
나와 다른 포지션의 경우엔 방금 이야기한 장슬기 선수를 꼽고 싶다. 두 명 다 축구 지능이 정말 높다.
WK리그에서 뛰며 득점한 적은 없었나.
중거리슛으로 두 골을 넣었었다. 운이 좋았다.
인천현대제철에서 국가대표를 꿈꾼 적은 없었나.
당연히 축구선수라면 국가대표의 꿈을 꾸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난 국가대표 발탁도 좋았지만, 제 2의 인생을 멋있게 꾸며나가는 것도 정말 중요하게 생각했다.
#. 미국에서의 이야기
이슬기 선수는 고민 끝에 ‘제 2의 인생’을 살기로 결심했다. 이 선수는 축구인 김태륭 씨의 추천으로 ‘한국학생선수교육원(이하 교육원)’을 알게 됐고, 교육원 대표인 김기중 씨와의 면담을 통해 미국 대학 진학(NCAA 진출)을 통해 제 2의 인생 개척하기로 마음먹었다. 교육원에서 미국 대학 진학 준비를 마친 이 선수는 현재 미국에서 ‘학생 선수(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는 대학생 운동선수)’로 활동하는 중이다.
결국 미국 축구를 경험하기로 한건가.
그렇다. 옛날에 어린 아이들을 만나면 "축구 열심히 해라."라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린 아이들을 보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축구도 열심히 해라"라는 식으로 말을 해준다.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한국학생선수교육원’을 통해 미국 대학으로 진학하게 됐는데, 교육원은 어떻게 알게 됐나.
직접적으로 알게 된 건 아니다. 김태륭 해설위원님을 통해 알게 됐다.
김기중 대표감독에 대한 생각은?
김기중 대표님과 이틀 동안 이야기를 해보고 교육원에 들어오게 됐다. 가지신 철학이 나와 잘 맞았다. 그래서 고민 없이 직진해서 교육원에 들어갔다. 김 대표님은 운동선수가 운동만 아니라 공부까지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신 분이시다.
김기중 대표감독님도 중앙수비수 출신이다. 통하는 게 있나.
공을 잘 차시는 분이다. 그러면서도 거친 플레이를 좋아하신다. 가끔씩 감독님이랑 풋살을 하는데, 많이 배운다. 축구 못하는 척 하시는데 진짜 잘하신다.
노력 끝에 미국 대학축구를 경험하게 됐다. 미국 대학 축구는 어떤 느낌이었나.
처음 갔을 때 되게 놀랐다. 다들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하는데, 운동도 그만큼 열심히 하더라. 난 미국에 가기 전까지 운동'만' 열심히 했었는데 그것만으로도 진짜 힘들어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미국 대학 선수들이 정말 멋있어 보였다.
대학교에 다니게 됐다. 전공은 무엇인가.
비즈니스(경영학)를 전공하고 있다.
대학교 이름은 무엇인가.
발튼 커뮤니티 칼리지라고, 미국 캔자스 주에 있는 학교다.
(미국 지도를 가리키며)어디에 있는 곳인가.
저 쪽 가운데 캔자스 주에 있다.
저기는 사막이 많은 지역이라고 알고 있는데...
시골이긴 하다. 근데 난 영어를 배우기 위해 2년제 학교를 다니고 있다. 내 목적에 딱 맞는 곳 같다. 방해요소도 없고, 애들도 세계 각지에서 오다 보니 차별도 별로 없다.
세계 각지에서 선수들이 온다고 했는데, 들어본 나라들 중에서 가장 특이한 나라는 어디인가.
나이지리아? 육상이나 수영을 많이 하더라. 스페인 선수들도 많다.
미국 대학축구로 가면서 실업리그를 떠나야 했다. 후회되지는 않나.
후회는 안 한다. 오히려 미국을 조금 더 빨리 갔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좋은 환경에서 운동도 할 수 있고 공부도 할 수 있어서 정말 좋다. 축구를 하는 어린 여자 선수들에게 나의 길을 추천해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WK리그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나.
나와 같이 운동했었던 언니들이 경기를 뛰는 걸 보면서 과거를 회상하곤 한다. 하지만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는 없다. 제 2의 인생을 잘 준비하고 싶다.
미국 대학축구와 WK리그, 어디가 더 잘하나.
나는 아직 2년제 대학에 다니며 4년제 편입을 준비하는 중이다. 4년제 편입 이후에나 NCAA(전미대학체육협회)에서 활약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대학축구를 함부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다만, 미국 여자축구는 세계 1등이다. WK리그도 분명 좋은 리그지만, 미국 대학 축구선수들도 나름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 어디가 잘한다고 확답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축구 면에서 적응하기 힘들었던 부분은 없나.
피지컬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내가 어디 가서 힘으로 밀리는 사람은 아닌데 거기 선수들은 골격부터 다르더라. 그래서 개인 시간동안 웨이트 트레이닝에 더 많은 투자를 하게 됐다.
그럼 미국 여자축구선수들은 WK리그 선수들보다 키가 큰 편인가.
170cm 넘는 애들도 있다. 물론, 엄청 작은 선수들도 많다. 다양한 지역의 다양한 팀들을 경험하다보니 선수들의 키도 다양하더라.
문화적인 측면에서의 어려움은 없었나.
맨 처음에는 언어 면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다행히 한국학생선수교육원을 통해 달라스 컵과 여름 캠프를 가면서 많은 발전을 이뤘다. 카페 가서 직접 주문도 해봤다. 지금도 영어를 공부하고 있다.
음식의 경우엔, 다른 나라 사람들도 우리나라 음식을 힘들어하지 않는가. 생각의 차이라고 본다. 맛있는 음식들도 많더라.
미국에서 가장 맛있었던 음식은?
샐러드? 신선하고 맛있었다. 미국 대표 음식 하면 햄버거나 피자가 꼽히는데,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 음식들이다.
축구선수들은 카페를 많이 간다고 들었다. 좋아하는 메뉴가 있나.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 좋아한다. ‘깔쌈’해서 좋다. 가끔씩 스무디를 먹기도 하지만...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제일 좋다. 약간 카페인 중독 같다.
미국 선수들도 욕 하나.
많이 한다. 미국에서 뛰어서 좋은 점도 있다. 뛰다 보면 영어 욕을 많이 알게 되는데, 거기 애들은 내 말을 못 알아듣는다. 그래서 급하면 편하게 "야, 야, 야!" 이렇게 말한다.
미국 선수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쳐준 적이 있나.
많았다. 내 친구들은 기본적인 한국어 인사가 가능하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잘 가, 잘먹겠습니다... 이 정도는 할 줄 안다. 내가 다 가르쳐줬다.
그럼 막 욕도 알려주고 그랬나.
많이 물어보더라. 근데 나도 욕을 별로 안 좋아해서 진짜 심한 욕은 가르쳐주지 않았다. 바보? 이 정도는 가르쳐줬다.
미국 대학축구에서도 프로 진출을 하나.
그렇다. 실력과 의지가 있으면 프로로 간다. 하지만, 내 친구들 중에는 축구 이외의 다른 것들을 하고 싶어 하는 애들이 많더라. 변호사를 하고 싶어 하는 애들도 있고 선생님을 하고 싶어 하는 애들도 있다. 물리치료사를 하고 싶어 하는 친구도 있다.
이슬기 선수는 어느 진로를 생각하고 있나.
프로리그를 가면 좋긴 하겠지만, 이미 WK리그를 경험했기에 공부 쪽에 집중하고 싶다. 내 꿈은 스포츠 국제기구에서 일을 하는 것이다. FIFA나 IOC나 대한체육회에서 일을 해보고 싶다.
지금은 운동을 어떻게 하는 중인가.
코로나19 때문에 미국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한국에서 교육원에 소속된 아이들과 같이 운동 중이다. 그리고 강남에 있는 피트니스 2.0 센터도 다니고 있다.
#. 또다른 이야기
가장 자신 있는 능력이 뭐라고 생각하나.
몸싸움. 난 공을 예쁘게 차는 스타일이라기보다는 공을 거칠게 차는 스타일이다.
그럼 ‘롤모델’이 있나.
(세르히오) 라모스를 좋아한다. 거친 스타일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라모스는 리더십도 있더라.
대한민국에도 그런 선수가 있다. 조성환 선수를 아는가.
안다. 좋아한다. 공을 예쁘게 차는 선수도 필요한 건 맞지만, 거친 선수들도 분명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축구는 몸싸움이 허용되는 운동 아니겠나.
라모스 선수에게 영상편지... 가능한가.
실화인가... “안녕하세요 라모스 선수님, 축구 인생에 있어서 가장 배울 게 많은 선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존경합니다. 앞으로도 멋진 모습 부탁드리겠습니다.”
조성환 선수에게도...
ㅋㅋㅋㅋ “안녕하세요,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플레이로 되게 유명하신 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라모스 선수의 경기는 시간이 안 맞아서 보지 못하지만, 조성환 선수의 경기는 시간이 맞으니까 자주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정도면 ‘여자 라모스’라고 봐도 되나.
그렇게 표현해 준다면 정말 영광이다.
그럼 경기장에서 싸운 적은 없나.
남을 다치게 하려고 거칠게 하는 건 아니다. 그래서 언니들도 이해해줬다. 물론, 상대가 아파하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그렇게 사과를 하고 나면 다시 거칠게 플레이했다. 나쁜 의도는 아니니까...
그거 아나. 남자 축구에도 이슬기가 있었다. 지금은 은퇴했지만...
안다. 네이버에 이슬기라고 치면 그 분이 제일 먼저 나온다.
계속 부탁해서 미안하지만 영상편지 가능한가.
“같은 축구인으로서 굉장히 멋있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 정말 응원하고, 뵐 수 있다면 뵙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에필로그
이슬기 선수는 다음 학기부터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도전을 이어갈 것이다. 이슬기 선수의 새로운 삶을 응원한다.
출처: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8913396&memberNo=6525744